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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학원의 하농과 바흐

음악과 함께한 추억

by 회음 2023. 2. 2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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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다. 초등학교 6년 중 꽤 많은 방과후를 피아노 학원에서 보냈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놀던 시절이라 다른 학원을 다닌 적은 거의 없었지만 피아노 학원만은 꾸준히 다녔다.

 

그 당시 그 지역에서 어린이들을 피아노 학원에 보내는 게 유행이 되었기 때문이긴 하다. 나의 부모에게 그 정도 경제력은 있었고 말이다. 나의 부모도, 나도, 딱히 음악에 취미나 재능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다들 배우고, 또 그 정도 교양은 쌓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보냈고, 다녔다.

 

상가 건물의 어느 가게 자리, 들어가면 긴 소파가 놓인 대기 공간이 있고 그 앞에 노래방보다도 작은 격실이 네 개 있었다. 어린이 하나가 들어가 앉으면 꽉 차는 공간, 문을 닫으면 공기가 안 통했다. 가끔 피아노 선생님이 들어와 벤치형 피아노의자에 나와 나란히 앉거나 옆에 서서 소리를 지르며 가르침을 줄 때는 답답한 칸막이실이 후끈 달아올랐다.

 

난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만 둘 정도로 싫지는 않았다. 아니, 왠지 그만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씩, 매번 지각을 하고, 가서는 소파 옆에 꽂힌 추리소설에 푹 빠져 있다가 선생님이 등짝을 치면 마지못해 피아노실로 들어가 몸을 늘어뜨리고 뒷벽에 등을 기대며 반쯤 눕다시피 하농을 치기 시작했다.

 

하농은 기본적인 손가락 연습곡이었다. 자주 쓰이는 패턴의 악절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곡들이 난이도 단계에 따라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내가 제일 싫어한 게 하농이었다. 자주 선생님한테 칭얼거렸다. “선생님, 오늘은 하농은 안 치면 안 되여?” 그녀는 받아주는 법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는 체르니를 쳤다. 바이엘을 떼고 난 다음에는 체르니 100, 30, 40번의 순서로 악보책을 샀다. 체르니는 하농보다는 좀 나아서, 그런대로 음악이라고 할 만한 곡들이었지만 역시나 단조롭고 딱딱했다. “선생님, 유행가나 팝송 같은 거 가르쳐주시면 안 되여?” 자부심 강한 음악인이었던 그녀는 눈을 부라리며 단칼에 거부했다. “그런 천박한 걸!”

 

당시 문방구에서는 유행가나 팝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악보를 피스(piece?)라고 부르며 한 장에 500원씩 팔았다. 가끔 한참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리곤 했는데, 아직 체르니100번을 겨우 시작한 나로선, 산다고 해도 혼자 연습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도, 연습하긴 싫어도 잘 치고는 싶었나보다.

 

그래도 체르니30번을 들어가자 선생님이 뭔가 대중적인 악보책을 하나 사라고 했다. 팝송이나 가요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악다운 음악곡이 들어 있었다. 베토벤 월광,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에델바이스, 파랑새, 이런 곡들을 초보 피아노 학생이 치기 좋게 편곡해 놓은 거였다.

 

거기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들어 있었다. 난 그 곡과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농과 체르니를 차례로 치는 고역을 견디고 나면, 드디어 내 손끝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만들어지는 환희를 잠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당장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악보 전집을 구매했다. 그리고 생전 치지 않던 집의 피아노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다른 곡들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만큼 좋지 않았고 쉽지도 않아서 애를 먹다가 오래지 않아 그만두었지만 말이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피아노 초보의 마지막 단계인 체르니40번을 시작하게 되었다. 몇년의 고행 끝에 얻은 성취에 감개무량하긴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나마 나의 숨통을 트여주었던 대중적인 악보책을 선생님이 아예 빼버렸다. 그리고 대신 바하를 집어넣었다. 그래서 나의 피아노 수업(연습) 루틴은, ‘더 어려운하농, 체르니40, 그리고 바하가 되었다.

 

하농과 체르니도 싫었지만 바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바하의 첫 곡을 치는 순간 그를 증오하게 되었다. 훗날 대위법, 평균율 등 그의 용어를 알게 되었을 때도 어린 시절 느꼈던 짜증이 생생히 올라왔다. ‘이런 건 음악도 아니야.’ 어린 나는 생각했다. 더 훗날 알게 되지만 그건 수학이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분노는 수학에 대한 분노와 같은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결국 피아노 학원을 때려쳤다. 재미도 흥미도 없는 곳을 정말 오래도 다닌 것이다. 당연히 이후로 피아노는 거의 쳐본 적이 없다. 가끔 좋아하는 노래의 '피스'가 눈에 띄면 사서 한두 번 연습해 보는 정도였다. 리처드 클레이더만 이후로 유일하게 샀던 악보 전집은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였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요즘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조금 튀고 촌스러운 클레이더만과 달리 윈스턴은 잔잔하고 세련되어 요즘 세상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말이다. 슬슬 좋아했던 음악들이 나온다. 다시 들어보니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 역시 음악은 힘이 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힘도 있다. 매번 무슨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한국인들이 화제가 된다. 가끔 보면 거의 열병을 앓는 팬들도 생기는 듯하다. 나도 인터뷰 기사나 동영상을 찾아볼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뭐지?'. 콩쿠르 우승곡으로 친 쇼팽이나 리스트의 음악성은 그렇다치고, 그걸 누가 연주했는지가가 그렇게 의미있는 걸까? 게다가 그 상황은, 수능에서 전국 1등한 사람이 일약 스타 연예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정말 팬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기분이다.

 

 

https://youtu.be/TpRjpM_VB7I

 

https://youtu.be/NCeqS0fsh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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