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주택이던 우리집엔 턴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그걸 아빠는 전축이라 불렀기에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마치 스피커는 없는 것처럼, 갈색 나무 받침대와 그걸 덮는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가 얹힌, 덜거덕거리는 상자 같은 것이었다. 그 안에는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기계 장치가 있었다. 한가운데는 음반을 꽂는 꼬챙이가 솟았고 그 주위로 동그란 고무판이 깔렸으며 가장자리에는 암(arm)이라는 이름의 바늘 달린 막대가 놓였다.
나의 부모는 결코 음악 팬은 아니었다. 전축은 어떻게 구색을 갖춰 마련해 놓았지만, 음악을 트는 일은 거의 없었고 음반도 몇 장 없었다. 항공사 홍보 음반 하나, 마리안 앤더슨의 흑인 영가 음반, 그리고 유일하게 틀던 캐롤 음반 두 장이 다였다.
그리고 성탄절이 되면 드디어 턴테이블을 열고 캐롤 음반을 틀었다. 조심스레 음반 재킷 봉투에서 플라스틱 원반을 꺼내고 붉은 벨벳이 달린 구두솔 같은 도구로 싹싹 닦았다.
1년만에 사용하는 턴테이블의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를 들어올려 열고, 마치 그 동안 작동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조금 헤매다가, 암을 레스트(받침대)에서 들어올려 바늘을 음반 위에 살짝 놓으면, 캐롤이 시작되었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우리 자매는 캐롤에 맞춰 안방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연례 행사였다.
근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마리안 앤더슨의 흑인 영가 음반이 좀 뜬금없다. 성가인 셈이니 아버지가 산 음반 같은데... 그러고 보니 마리안 앤더슨 전기를 읽은 기억도 난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부분은 마리안 앤더슨이 한창 잘 나갈 때 독일 가곡에 도전했다가 비웃음을 당하고 언어와 문화를 먼저 익혀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었는데…
Marian Anderson
https://youtu.be/nlk6iRxDki0
ps. 이 글을 쓰고 나서 집에 보관하던 엘피 음반들을 정리했다.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줄줄이 나올 뿐 아니라 마리안 앤더슨과 징글벨 음반까지 발견! 부모 집을 떠나올 때 가지고 나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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