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에 음악은 이전 세대로부터 전수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춘기의 나에겐 음악을 전수해줄 만한 선배가 없었다. 워낙 음악의 불모 가정에서 자란 탓에, 음악에 대한 흥미가 늦게 발달되었다.
하지만 전세대로부터 처음 팝송을 전해 들었던, 내 인생의 첫 영어 노래에 대한 기억은 꽤 강렬하다. 그건 노처녀 미술 선생님에게서였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자신의 집 한쪽을 화실로 꾸미고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던 여자가 있었다. 이미 중년을 넘긴 나이에 혼자 살던 그분은 서울대 미대 출신이라고 했다. 변변한 미술학원이 별로 없던 시대에 중산층 엄마들은 앞다퉈 꼬마들을 그 집에 보냈다. 나와 다른 아이들은 그 화실에서 학교의 미술 교육과는 꽤 다른 경험을 했다. "예쁘게, (잘못) 배운 대로 그리지 말고 보이는 대로 그리라”는 호통이 그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무를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갈색과 초록색으로만 그려도 혼이 났다. 자세히 보면 분명히 파란색과 노란색, 빨간색 같은 색채들도 보이니까, 그런 다양한 색들도 집어넣어서 점묘화처럼 그림을 그리라고 '강요'했다. 꽤 엄한 선생님이었다.
눈치를 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노래가 하나 흘러나왔다. 물론 미술 선생님이 틀어둔 라디오였는데, 선생님은 갑자기 벌컥 화를 내며, “당장 저 노래 꺼!”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리둥절해하며 겁에 질린 꼬마들에게 선생님은 또 갑자기 차분해져 노래 제목을 알려주며 노랫말의 뜻까지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건 stand by your man이라는 컨트리 뮤직이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고 그 남자가 너에게 못되게 굴어도(패도?) 반드시 그 남자 곁에 머물러라”는 노랫말이었다. 그러면서 미술 선생님은 그게 아주 나쁜 미국 노래이며 절대 들어서는 안 되는 내용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꼬마들은 선생님을 멍하니 쳐다보며, 저게 바로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바로 내 인생의 첫 팝송이라는 게 꽤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가사를 정확히 찾아보니,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You'll have the bad times, And he'll have the good times, Doing things that you don't understand”라는 구절이 있다. ‘여자의 생활은 지옥인데 남자는 여자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며 즐겁게 보내는 시절이 있다’니.... 작사가가 대단히 통찰력이 있으며 직설적이 아닌가 싶다.
Stand By Your Man by Tammy Wyn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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