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고1때였다. 그리고 고2때도 기악 시험을 본다고 했다. 이번에도 테리우스는 기타를 들고 오면 점수를 잘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난 당연히 이번에도 기타 곡 하나를 연습했다.
1학년 때 연습한 [겨울 아이]는 동화 같은 아름다운 곡이었고 사랑과 축복의 노랫말이었다. 나에게 고2는 음울한 해였다. 친구가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가 정학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학교와 기성 세대에 대한 환멸과 반항심이 들끓던 때였다.
이번에 고른 곡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보러 페어]라는 곡이었다. 노랫말은 언뜻 보기에 그냥 시골 장날의 풍경 묘사 같았지만 사이사이 삽입된 암시는 떠나간 연인에 대한 원망이었고 선율은 매우 스산했다. 하지만 몹시 아름다운 곡이기도 했다. 거의 음산하기까지 한 분위기의 몽환적인 선율이 주는 기이한 아름다움을 뿜는 곡이었다.
음악 시험 날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타 현을 뜯으며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절정부에서 딱 한 번 큰소리를 질렀다. 1학년 때보다 더욱 많이 연습을 해서 그런지 노래도 기타 연주도 막힘이 없었다. 사춘기의 슬픔이 밀려올 때마다 그 곡을 반복해서 연주하고 또 연주한 밤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곡이 끝나자 교실엔 침묵이 감돌았다. 한 명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의례적으로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였건만, 곡이 주는 정서에 압도된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벌떡 일어나 자리로 돌아왔다. 음악 교사도 아무 말이 없이 인상만 쓰고 있었다. 나중에 점수를 확인해 보니 98점이었다. 호언대로 몹시 짠 점수였다.
하지만 고2때 음악 시험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다른 아이의 피아노 연주였다. 그 아이는 1학년 때 영화 [스팅]의 테마곡을 연주했다. 근데 너무 멋을 부리며 쳤다고 할까? 유명한 곡이고 멋진 곡이었지만 강약과 장단을 너무 제멋대로 변형해서 괴상하게 들렸다. 연주가 끝나자 음악 교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좀 예쁘게 칠 수 없어"라고 했다. 나중에 점수를 89점밖에 안 주었다며, 그 아이는 펄펄 뛰고 분해했다.
고2때 그 아이는 쇼팽인지 리스트인지의 엄청 어려운 정식 연주곡을 매우 정석대로 쳤다. 음악 교사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잘 칠 수 있으면서!"라고 말했다. 나도 매우 놀랐고 말이다. 그 아이는 마치 피아니스트처럼 피아노를 쳤고, 평소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았으면서 그 애의 피아노 치는 모습에 나는 반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다가가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랑 정치적 입장이 반대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애는 시위 반대파였고 나는 옹호파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늘 은근히 지켜보았고 성인이 된 후에는 가입하는 사회관계망 서비스마다 그애를 찾아보았다. 늘 평범한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한 나를 그애는 늘 1촌이나 친구로 받아주었다. 나는 그렇게 연구원으로, 엄마로, 원장으로 이력을 키워가는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ijxNgR2eW4